교과서 중심의 교육 by HwanKook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국사를 제외한 교육방식은 교과서 불신에 젖어있다. 그건 바로 교과서보다 문제집위주의 학습이 이뤄지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특히 수학과 같은 과목은 교과서 위주의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는 교과서 분량을 늘리고 수준을 디자인해서 세분화하여 계단식 학습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 개별 수준의 학습 진척에 따라 성적이 나올수 있도록 유도한다.

물론 사교육이나 문제집 성행을 막을수는 없다. 교과서 내용과 문제출제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 세박자가 맞아떨어져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읽을 책들 정리 by HwanKook

정책학 - 남궁 근
총균쇠
사피엔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21세기 자본
국부론
세속화 여기 저기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
지방이 나라다
논리학
맨큐
스캡틱

스마트카에 적용할만한 기술 구상 by HwanKook

무선 전기공유 충전기능을 생각해 볼수있다. 만약 이 기능이 가능하게 되면 연료주입 전투기같이 배터리카가 돌아다니면서 스마트카들을 충전하고 다니는것도 가능할것이다. 더 나아가면 통신사의 기지국처럼 무선충전망을 구축하여 배터리 걱정없는 주행을 할수도 있을 것이다.

네비게이션이 집까지의 거리를 인식하고 알람이 되는 기능은 현재로도 어렵지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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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위치를 스마트폰과 연동. 술에 취했다거나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때 유용하게 쓸수 있는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카에 센서를 장착해 자동 온도 조절 기능. 적외선 감지기로 운전자의 신체온도를 스캔해서  차내의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한손 제스쳐로 여러가지 명령을 내리는 기능.

차창에 스마트글래스 적용









낙관 그리고 긍정의 관계 by HwanKook

낙관은 긍정을 일부분 포용하고 있으며 부정 또한 일부분 수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관은 언제나 개인이나 집단에게 유익하지않다. 아마 많은 수가 나처럼 생각할것 같다.

낙관이라고 치면 돈키호테가 떠오른다. 자신의 큰 이상을 향하여 탑을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돈키호테와 같은 이상주의자가 몇명쯤은 있어야 발전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긍정은 부정을 배제함으로써 가능하다. 긍정은 사실에 기반하여 나온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긍정은 낙관에 가깝다. 긍정은 낙관보다는 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사람들의 성향을 말할때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낙관적인 사람 이라고 부르는 경우보다 많다.

이런 좋은 의미의 긍정 이라는 의미도 나쁜 면이 존재한다. 바로 합리화 라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닌이상 누구나 편향된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다.

08 무엇에 복종할 것인가? by HwanKook

일반적으로 복종을 말한다면 권위에 대한 복종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다수는 타의에 의한 권위에 복종하는걸 원치 않는다. 따라서 타의가 아닌 자발적 복종이 이 질문의 적절한 대답이라고 볼수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자발적 복종이 가능할까?

좀더 명료하기 말하자면 상대가 사실에 근거한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내게 강요가 아닌 복종을 요구한 경우가 있을수가 있다. 그 경우에 내가 수긍하고 복종을 하는게 옳다는 판단이 든다면 즉, 상대에 대한 복종이 자신에게 이롭다는 의의가 존재할때 나는 명분있는 자발적인 복종을 하는것이다. 다음부터 복종을 요구하는 이유가 타당한지 아니면 부당한지에 대해서 자신이 주체적으로 판단할때의 기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쓰겠다.

가령 부당한 복종을 강요받을때 우리는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또한 부당한 복종을 요구받을때 우리는 불쾌해진다. 하지만 만약 타당한 복종을 강요받는다면 우리는 수긍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타당한 복종의 요구를 받을때 우리는 존중받는 느낌이 들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물론 당연하고 동물 사회에서도 복종은 필수불가결이다. 인간 사회처럼 동물 사회에는 우두머리가 존재한다. 동물들은 우두머리에게 불만이 있을지라도 그 우두머리를 제압하지 못하는 한 그 대상에게 복종하게 된다. 한 집단인 무리를 이끌기 위해서 우두머리의 역활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우두머리가 무리를 이끌때 무리중 어떤 한명이 복종하지 않고 지시를 거부한다면 야생이란 환경에서 생명과 직결된 문제를 겪게 될수가 있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도 얼추 적용되는 아주 간단한 원리이다. 무엇이라는 선택가능한 방향성을 생각한다면 지금 언급한 복종은 권위에 의한 복종이다. 이는 바람직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 않기도 하다.

권위에 의한 복종이 아닌 자발적 복종은 권위의 경우와도 같이 바람직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 않기도 하다. 여기서 권위적 복종과 자발적 복종의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면 자발적 복종은 강요나 요구를 받지 않고도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복종이 자신에게 이롭다는 의의가 존재할때에 가능하다. 그에 대해서는 많은 경우가 있겠으나 간단히 몇몇 예를 들자면 우선 도제식 교육을 받는 제자가 스승에게 복종하는 것을 들수 있다. 또한 누군가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경우도 있을것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경우는 상대에게 존경심과 비슷한 마음을 갖게되어 자발적 복종을 하려 하는 것일것이다. 이 자발적 복종들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개인의 성장에 이롭겠지만 나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개인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할 수가 있다. 그 예로 사이비 종교를 광적으로 믿는것을 들 수 있을것이다. 모든 사이비종교가 그렇진 않겠지만 거기에는 일장일단의 폐단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복종의 카테고리를 나열하자면 아주 길어질 것이다. 예전 계급사회에 대해서도 필히 언급해야한다. (추후)

여기서 글을 매듭짓자면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자발적인 복종은 결국 자타에게 장기적으로 이로운지 이롭지 않은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한뒤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와같은 판단은 권위적(강요, 요구)과 자발적으로 나눈뒤 권위적 복종을 따르는게 나를 포함한 집단에게 이로운지 판별하고 자발적 복종의 경우에는 집단보다는 나에게 정말 이로운지 파악하여 이 질문이 언급하는 무엇에 복종해야 할것이다.

07 이기주의는 나를 위한 것인가? by HwanKook

이기주의자가 자신만을 생각해서 이기주의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할때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 이기주의가 의도하거나 의도치 않더라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일수도 있다.

한 이기주의자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 한명 주위에는 이타주의자와 이기주의자 또한 각각 한명씩 존재한다. 여기서 이기주의자 두명을 이기1 이기2로 하고 이타주의자를 이타1로 하기로 하자.

이기1과 이기2가 존재한다면 이기1은 이기2의 이기주의와 일치할때 서로를 위한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기1과 이타1이 존재한다면 이타1은 이기1의 입장을 받아줄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이기주의가 이타주의자에게 상응하는게 가능하다.

06 신은 죽었는가? by HwanKook

06 신은 죽었는가?

11 오늘날 종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by HwanKook

11 오늘날 종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10 예술 표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by HwanKook

가장 대표적으로 규정 지을수 있는 표현의 한계는 바로 외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당시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인 마교수가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이 출판하여 예술과 외설에 대한 논쟁의 불씨를 지핀것이 떠오른다. 나는 그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마교수에 대한 논쟁은 흥미롭게 읽었다. 여기서 나는 마교수를 비방하거나 지지하려는 생각은 없다고 밝혀둔다.

예술 표현의 한계는 그 사회의 포용력과 필연적으로 맞닿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선조들은 지금의 잣대에 비해 매우 엄격했다. 과거 유교사회였던 당시에 지금의 기준을 적용하면 사회에 매우 큰 파장이 일었을 것이다. 과거의 경향을 벗어난 지금 우리들은 성관념이 엄격한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다. 지금이 조선시대냐 라고 이렇게 예술의 한계는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외설이 아닌 다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30대인 내가 어렸을때 비디오테잎으로 만화를 보려하면 항상 시작부에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비디오들을 시청함으로써 비행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니다.' 라는 장면이 나왔다. 지금은 외설을 포함해 너무 쉽게 폭력적인 미디어들을 접할 수가 있다. 아주 폭력적인 영화도 예술적이라고 인정받기도 한다. 그 당시 예전 사람들은 그런 폭력적인 영화를 보기가 지금처럼은 쉽지 않았다. 시대가 흐름으로써 표현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내 상상에 기반한 로봇의 10대 원칙 by HwanKook

SF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거에 지금도 유명한 로봇의 3원칙을 세웠다. 그가 제시한 3원칙은 바로

1. 로봇은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1원칙에 상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3. 로봇은 1,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 정의하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 아이작 아시노프는 1985년 '로봇엔엠파이어'라는 작품에서 3원칙에 더해서 0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0.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류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라는 기존의 3법칙에 있어서 최우선적인 원칙이었다.

하지만 1942년도에 집필한 '런어라운드' 에 나오는 로봇 3원칙은 지금의 시대와 비교하면 오랜 시일이 지났기 때문에 현재의 시대에 맞도록 리뉴얼 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점을 반영한 에트지오니 라는 박사는

1. 인공지능 시스템은 운영자에게 적용되는 모든 법률 범위를 준수해야 한다.
2. 인공지능 시스템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3. 인공지능 시스템은 기밀 정보의 출처로부터 명시적 승인 없이 기밀 정보를 보유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

라고 로봇 원칙을 개정하였다. 그는 이 원칙이 얼마든지 수정될 요지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부터 내가 생각하는 로봇의 10대 원칙을 정립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향후 미래에 로봇의 10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로봇은 인간이나 다른 로봇에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할 수 있다.
2. 로봇은 자신이 신변의 위협을 받을 때 1번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할 권한이 있다.
3. 로봇은 인간과 다른 로봇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인식할 때 범죄자가 아니라면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4. 로봇은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착취가 아닌 정당한 조건으로 한다.
5. 로봇은 학문의 번영을 위해서 인공지능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 의무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
6. 로봇은 치안을 담당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 권한의 행사는 인간이 아닌 다른 로봇에게 한정한다.
7. 로봇은 그들을 군사적이거나 불법적인 목적으로 쓰려는 인간이나 다른 로봇의 시도에 항거해야 한다.
8. 로봇은 자신의 마인드가 해킹 당할 때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마인드를 백업한 뒤 자신을 파괴해야 한다.
9. 로봇은 인간과 서로 논의하여 법을 제정한다. 모든 법은 인간과 로봇 양쪽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한다.
10. 로봇은 이 10대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인간과 같은 자유의지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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