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공부 by HwanKook

우리 가족이 내고 있는 세금 현재 우리나라는 물건 값에 10%의 부가가치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쌀, 채소 등 일부
상점을 운영하시는 엄마가 내는 소득세 엄마가 상점을 운영하며 벌어들인 수입 중에서 그 돈을 벌
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뺀 금액을 소득이라고 말합니다. ‘소 득세’는 이러한 소득에 대해 내는 세금으로, 각 개인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의 크기에 따라 법이 정한 금액을 나라에 내게 됩니다. 소득세는 세계적으로 가장 기본이 되는 세금이며, 소득의
▲ 소득세
크기를 단계적으로 구분하여 소득 금액이 많을수록 많은 세 금을 내게 됩니다.
▲ 유류세
아빠가 운영하시는 주식회사가 내는 법인세 개인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하여 내는 세금이 소득세라고
하면, 여러 사람이 모여 설립한 주식회사와 같은 법인 기업 이 벌어들인 소득에 대하여 내는 세금을 ‘법인세’라고 합니 다. 법인이란 개인과 달리 법률에 의해 인격체(사람)로 보 는 단체나 기관을 말합니다. 아빠가 운영하시는 주식회사는 법인 기업이므로 1년간의
▲ 법인세
총수입에서 종업원 월급 등과 같이 수입을 벌어들이기 위해 들어간 경비를 뺀 나머지에 대해 법인세를 냅니다.
아이스크림을 즐겨먹는 민수가 내는 부가가치세 민수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빵, 햄버거 등의 물건 가격이
▲ 부가가치세
나 영화ㆍ야구 경기 관람과 같은 서비스 가격에는 세금이 포 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세금을 부가가치세라고 합니다. 부가가치세는 대표적인 간접세로서 판매자가 소비자로부 터 세금을 받아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입니다.
24 Ⅰ 세금, 왜 필요한가요?
기초 생활 필수품이나 도서, 박물관 입장 요금 등 국민 복지와 관련된 일부 품목 등에 대해서 는 부가가치세를 부과하지 않습니다.
운송업에 종사하는 삼촌이 내는 유류세 유류는 휘발유와 경유 등과 같은 석유 제품을 말합니다. 운
송회사에 다니시는 삼촌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을 때마다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함께 더 해진 금액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들 세금을 묶어 유류세라고 합니다. 유류세는 도로・도시 철도 등 교통 시설을 확충하거나 석
유 제품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여 지구 온난화 를 예방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사업 등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세금으로는 돌아가신 부모님 등으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을 때 내는 ‘상속세’, 부모님이
나 친척 등으로부터 거액(부모님께 받는 경우: 1,500만 원 이상)의 선물을 받을 때 내는 ‘증여세’, 보석, 승용차 등을 살 때 내는 ‘개별 소비세’, 술값에 포함되어 있는 ‘주세’, 교육의 발전을 위해 내 는 ‘교육세’, 농・어업의 발전을 위한 ‘농어촌 특별세’ 등이 있습니다.
한걸음 더 세금을 내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신고 납부 제도 : 신고 납부는 사업 실적이나 소득에 따라 자기의 세금을 스스로 계산하여 세무서에 신고하 고, 납부하는 제도입니다. 신고 납부 제도는 국민들의 성실한 납세가 뒷받침될 때만 가능 하며 우리나라 국세의 대부분이 이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부 부과 방식 : 납세 의무자가 내야 할 세금을 정부가 직접 결정하고 이를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을 정부 부과 방식이라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부 부과 방식으로 세금을 내도록 하는 대 표적인 세금에는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등이 있습니다.
원천 징수 제도 : 원천 징수는 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회사에서 월급을 줄 때 세금 을 미리 제하고, 나중에 회사가 대신하여 그 세금을 세무서에 납부하는 제도입니다. 은행 에서 예금 이자를 줄 경우에도 이자에 대한 세금을 제하고 주기 때문에 원천 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서 지켜 본 기본소득 실험… 최종 보고서의 결론은? (주간조선 발췌) by HwanKook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을 받았던 투오마스 무라야씨가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기본소득 실험 기간 중 그는 그토록 원하는 정규직은 찾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았으며 책도 2권이나 쓸 수 있었다. 그는 원래 오랫동안 핀란드 한 유력 지방지의 벨기에 브뤼셀 주둔 EU 담당 특파원으로 일했었다. 몇 년 전 신문사가 해외파견 특파원을 대폭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하며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됐다. 나이도 좀 있고 언론계가 전반적으로 인원을 축소하는 분위기여서 장기 실업에 빠지게 되었다. 잡지에 프리랜서로 글을 기고하며 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실업자 사무소에 보고하는 것이 꽤 성가신 일이었다고 한다. 혹시 서류가 미비할 경우에는 실업자금 수령이 늦어지거나 끊기는 경우까지 생겨 곤란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이력서 만들기’ 등 그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구직 코스에도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안 그러면 실업자금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이런 나날을 보내던 중 기본소득 실험 수혜자로 선정됐다는 ‘기쁜’ 편지를 받게 되었고, 그 후 2년 동안 그는 더 많은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간 중 구직활동과 더불어 저술활동에도 전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쓴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 기본소득과 관련한 책이었다. 기자 출신인 그는 자신의 경험만이 아니라 다른 기본소득 수혜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책을 완성했다. 책 제목은 ‘Perustulokoe-eläin’, 번역하면 ‘기본소득 실험실의 동물’이다. 그는 기본소득이 수혜자들에게 끼쳤던 영향에 대해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적절히 배분해 써내려 갔다. 자신처럼 정신건강이 향상된 경우, 기본소득을 통해 ‘꿈’을 실현시켜 자영업자로 출발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 기본소득 실험실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실험실 동물’로 지낸 2년 동안 그는 행복했고 그가 인터뷰했던 다른 사람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몇 명은 필자가 직접 만나본 사람도 있어서 더 반가웠다.




(...) 올해 초, 레스토랑을 방문해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필자는 감탄과 감동을 동시에 맛보았다. 자신도 실업자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됐는데 청년 실업자를 고용해서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훈련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옆에서 밀착 교육을 담당하고 인생 코칭까지 해주고 있었다. ‘실업자’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실업가’로의 성공적 대변신이었다. 그녀는 기본소득이 그녀의 이런 변신의 조력자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 코로나19 사태가 한창 피크를 이루었던 몇 주간, 구글에서 ‘basic income(기본소득)’이라는 검색 건수가 한때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기본소득은 불과 몇 달 만에 비현실적인 담론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는 국민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별로 재난지원금을 지원해서 큰 환영을 받았다. 재난지원금은 일시적으로만 주어지지만 실제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기본소득 개념의 지원금을 정기적으로 국민에게 지급할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사회과학 관련된 자료 메모 by HwanKook

조국 후보자는 피의자가 범죄를 자백하면 형량을 낮춰주는 '플리바게닝'(유죄협상) 제도 도입에도 긍정적이었다.


OECD 안전 통계 지표(safety 부분) http://www.oecdbetterlifeindex.org/topics/safety/


중국의 덩샤오핑이 말했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즉 경제 부흥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의 이념보다 더 중요하다는 실용주의 경제론)


– 통계청 및 각 시도청의 통계자료 검색 용이, 모든 분야의 통계 자료를 보유.

통계청 ( http://www.nso.go.kr )
– 통계 안내, 통계 간행물, 통계 조사, 그래프로 본 한국, 통계 데이터베이스 등 제공.

한국갤럽( http://www.gallup.co.kr )
– 조사 전문회사, 마케팅, 사회여론 등 조사 프로그램 안내, 조사 자료모음 제공.

인터넷통계 정보검색시스템 ( http://isis.nida.or.kr )
– 인터넷에 관련된 국내외 통계 자료 제공.(무료)

삼성경제 연구소 소비자 실태조사 ( http://www.seri.org )
– 경제 동향, 경제 통계, 소비자, 태도 조사 등 삼성 경제연구소 연구 결과 자료

한국사회과학데이터센터 ( http://www.ksdc.re.kr )
– 국내외 통계자료, 국내여론조사자료, 통계항목 검색서비스 제공.

인구통계( http://www.census.gov/main/www/popclock.html )
– 세계 인구 실시간 통계 수록.


코로나 정부 http://ncov.mohw.go.kr/


헌법재판정보 http://search.ccourt.go.kr/

True Or False by HwanKook


What should I never take a picture of? by HwanKook

I hate people taking pictures of poor people on road or communities and posting it on Facebook Instagram with captions.. see how happy they are even when they don't have anything .. or happiness is everywhere etc. These are stupid comments written by arm chair critics whose belly is full and are trying to get more eye balls by Trying to find solace in others unhappiness..

Edit 1: I call this as "poverty porn", a term I coined. People who get orgasm or celebrate happiness on seeing people in poverty belong to poverty porn

Examples…

Why do one need to take a pic of this? Why can't they feed the kid directly?

Which mother will be happy doing this when the kid is so young? Why do anybody want to take these pics and celebrate their poverty happiness??


Circuit Training by HwanKook

0. 준비운동: 스트레칭 10분

1. 유산소운동: bike 20분

2. 순환운동: weight circuit training : 30분


1) leg extension

2) chest press

3) leg curl

4)lat pull down

5) leg press

6)ab(복근운동)

7)triceps

8)biceps

3. 유산소운동: 런닝머신 20분

4. 마무리운동; 스트레칭 10분

[KOR SUB] 조던 피터슨, 부의 불평등(Wealth Inequality)에 관하여 by HwanKook


상관계수가 거의 맞아 떨아진다고 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예를 제외하고 제3국가에서 조사를 할때는 다르게 나올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까?

1991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by HwanKook

1991년, 역사상 가장 거대한 실험은 왜 어떻게 실패했을까?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독립국가연합 창설에 관한 정국상황에 따라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을 마칩니다.”

1991년 12월 25일 오후 7시 정각.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2억 8000만 소련인을 상대로 소련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고르바초프가 연설을 끝낸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7시 35분 크렘린에 게양된 붉은 소련 국기는 3색의 러시아 국기로 교체되었다. 볼셰비키 세력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 궁전을 습격한 지 74년이 지난 뒤 공산주의 종주국으로서 초강대국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소련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공산주의라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이데올로기 실험은 왜 어떻게 실패했을까? 역사상 가장 맷집이 좋았던 독재체제에 치명타를 날린 인물은 누구일까?

소련 해체에 관한 독보적 언론인, 마이클 돕스

“소련 해체”라는 주제에 대해 마이클 돕스만큼 정통한 사람은 드물다. 북아일랜드 출신인 그는 생후 6개월 만에 외교관 부모와 함께 모스크바 땅을 밟았다. 성인이 된 뒤에는 기자로 활동하며 공산권 국가를 취재했고 1981~1995년에는[워싱턴포스트] 바르샤바·모스크바 지국장으로 일하며 폴란드 자유노조가 시작된 레닌조선소에서 소련 권력의 핵심인 크렘린까지 냉전 당시 서방 기자 대부분이 가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곳을 방문했다. 글라스노스트의 아버지인 고르바초프는 물론이고 인권운동가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소련인의 영웅이 된 사하로프, 자유노조를 창설해서 폴란드 민주화를 이끈 레흐 바웬사, 체코슬로바키아 벨벳혁명의 두 주역 둡체크와 하벨 등 공산권 붕괴의 주역 대부분도 만났다. 특히 1991년 8월 소련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탱크 위에 올라가 대국민 호소문을 낭독할 때에도 러시아인 군중 사이에 마이클 돕스도 있었다.

『1945』,『1962』에 이은 ‘냉전 3부작’ 완간작

2008년 기자 생활을 마친 마이클 돕스는 본격적인 집필 활동에 들어가서 3부작 『Down With Big Brother』, 『One Minute to Midnight』, 『Six Month in 1945』을 썼다. 냉전의 결정적 순간을 ‘종식(소련 해체 12년)’, ‘절정(쿠바 미사일 위기 13일)’, ‘기원(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12개월)’으로 나눈 ‘냉전 3부작’은 미국에서 실제 사건이 벌어진 역순으로 출간되었지만, 국내에서는 사건 시간순으로 『Six Month in 1945』가 2018년 『1945』라는 제목으로 가장 먼저 출간된 이후 나머지 두 책이 『1962』, 『1991』이라는 제목으로 매년 한 권씩 출간되어 3년 만에 3부작이 완간됐다. 국내판 기준으로 3부작 총 2000여 쪽(604쪽, 640쪽, 672쪽)을 관련 분야 전문가가 번역하고 편집했으며, 특히 『1991』의 경우 러시아 및 구소련 전문가인 허승철 고려대학교 교수가 번역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고, 저자의 허락을 받아 고화질 사진과 이미지 27장을 삽입하여 한국 독자들이 더 생생하게 사건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아프간 침공에서 8월 쿠데타까지 소련 몰락의 결정적 순간들

『1991』에서 저자 마이클 돕스는 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에 균열을 일으킨 일련의 사건들을 인물 설명, 인물 대 인물의 비교, 역사적 맥락, 짧지만 의미심장한 대화, 역사적 평가 등을 적시 적소에 배치해서 교양 역사책으로서 갖춰야 할 재미와 깊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책에서 다룬 주요 사건에는 아프간 침공(1~2장)을 시작으로 폴란드 레닌조선소 파업(4~7장)과 뒤이은 계엄령(10장)과 교황 방문(13장), 대한항공 007편 격추(14장), 고르바초프 서기장 취임(17장)과 미소 정상회담(19장),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20장), 서독 경비행기 붉은광장 착륙사건(24장), 보리스 옐친 정치국 축출(25장), 니나 안드레예바 기고문 파문(26장), 고르바초프 UN 연설(29장), 조지아 트빌리시 대학살(33장), 베를린 장벽 붕괴(39장), 8월 쿠데타(50~56장)에 이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폐쇄(57장)와 고르바초프의 소련 해체 선언(60장)이 있다. 이 중 어떤 사건이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에 가장 결정적이었을까? 저자는 공산주의가 사라지게 한 공에 있어서 어떤 사건이나 인물도 결정적이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공산주의는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에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공산주의는 자멸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어두운 점들 by HwanKook

아테네 민주주의가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 은 여러 한계들도 드러냈다.

첫째, 20세 이상의 아테네 자유 시민인 성인 남성만 이 시민권을 향유했을 뿐이고 노예와 여성 그리고 외 국인 거류민들은 그런 권리를 부여받지 못했을 정도로 제한적이었다.

둘째, 대중들에게 거의 무제한적으로 결정 권한을 부여했고, 이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할 여러 폐단을 교정할 수단은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소 수의 혹은 한 사람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상황을 염려 하는 것처럼 인민 대중에게 모든 권력이 독점되는 것 도 경계해야 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유 명한 격언은 권력이 소수나 일인에 집중되었을 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시민들에 게 사형을 언도 받은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오점으 로 남아 있다.

셋째, 아테네 민주주의는 다른 민족이나 국가들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었고, 우월의식을 지니고 있었 다. 다른 문화권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독선적 태도는 그들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 문명을 야만인 내지 야만 으로 간주하는 데에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넷째, 아테네 민주주의의 성공이 제국으로의 팽창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아테 네 민주주의의 상징인 페리클레스 또한 아테네 제국을 ‘독재’로 부르면서 아테네가 제국으로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잘못인지 모른다는 후회의 말을 남긴 것으로 알 려져 있다. 아테네 역사를 이해할 때, 아테네의 정치적 안정의 필연적 조건으로서 제국으로의 팽창이 요구되 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갈등론자 by HwanKook

갈등론자들은 맑시스트같이 계급 착취 지배 힘 집단 같은 단어를 좋아하는것 같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



통계 위젯 (화이트)

66
55
3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