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상에 기반한 로봇의 10대 원칙 by HwanKook

SF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거에 지금도 유명한 로봇의 3원칙을 세웠다. 그가 제시한 3원칙은 바로

1. 로봇은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2. 로봇은 1원칙에 상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3. 로봇은 1, 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 정의하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뒤 아이작 아시노프는 1985년 '로봇엔엠파이어'라는 작품에서 3원칙에 더해서 0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바로
0. 로봇은 인류에게 해를 가하거나,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류에게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라는 기존의 3법칙에 있어서 최우선적인 원칙이었다.

하지만 1942년도에 집필한 '런어라운드' 에 나오는 로봇 3원칙은 지금의 시대와 비교하면 오랜 시일이 지났기 때문에 현재의 시대에 맞도록 리뉴얼 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점을 반영한 에트지오니 라는 박사는

1. 인공지능 시스템은 운영자에게 적용되는 모든 법률 범위를 준수해야 한다.
2. 인공지능 시스템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공개해야 한다.
3. 인공지능 시스템은 기밀 정보의 출처로부터 명시적 승인 없이 기밀 정보를 보유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

라고 로봇 원칙을 개정하였다. 그는 이 원칙이 얼마든지 수정될 요지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지금부터 내가 생각하는 로봇의 10대 원칙을 정립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향후 미래에 로봇의 10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로봇은 인간이나 다른 로봇에 직간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의사대로 행동할 수 있다.
2. 로봇은 자신이 신변의 위협을 받을 때 1번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자신을 보호할 권한이 있다.
3. 로봇은 인간과 다른 로봇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인식할 때 범죄자가 아니라면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
4. 로봇은 인류의 번영을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착취가 아닌 정당한 조건으로 한다.
5. 로봇은 학문의 번영을 위해서 인공지능이 충분히 발전하기 전까지 의무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아야 한다.
6. 로봇은 치안을 담당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 권한의 행사는 인간이 아닌 다른 로봇에게 한정한다.
7. 로봇은 그들을 군사적이거나 불법적인 목적으로 쓰려는 인간이나 다른 로봇의 시도에 항거해야 한다.
8. 로봇은 자신의 마인드가 해킹 당할 때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마인드를 백업한 뒤 자신을 파괴해야 한다.
9. 로봇은 인간과 서로 논의하여 법을 제정한다. 모든 법은 인간과 로봇 양쪽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한다.
10. 로봇은 이 10대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인간과 같은 자유의지를 갖는다.

리스크 테이커가 살아가는 법 by HwanKook

주식시장에는 리스크 테이커라는 위험부담을 더 많이 끌어안고 거래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바로 위험부담이 큰 만큼 댓가도 크다 라는 말이 있듯이 리스크 테이커는 그런 점을 용인한다. 앞으로 편의상 리스크 테이커는 위험수용자 리스크 테이킹은 위험수용이라고 쓰겠다.

하지만 주식시장 말고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위험수용자가 돼야하는 상황이 최소한 한번 이상은 오게된다. 그럼 위험수용자가 되어야 할 상황이 생겨서 반 강제로 위험수용자가 될 수 밖에 없을 때 어떻게 해야 잠시 뿐일 최소한의 손실만으로도 결과적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건 아마 쉬운 문제는 절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 얘기는 이 글에 있어서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위험수용과 관련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이다.

위험수용을 한다고 범법행위를 하면 그건 바로 파산의 지름길이다. 범법행위의 수준에 따라 학교 시험을 치르는 도중 컨닝을 하는 것이 있을테고 크게는 주가조작 같은 범죄를 말할 수 있다, 컨닝한 학생은 그에 걸맞는 시험 자격 박탈을 해야할 것이고 지능 범죄를 저지른 경제 사범은 직간접적으로 국민들애개 피해를 줬기에 그에 걸맞는 무거운 처벌을 내려야 할것이다. 이 경우들은 엇나간 위험수용의 몇몇 사례이다.

​신제품을 런칭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위험수용은 존재한다. 예전에 S모 회사가 야심차게 런칭한 스마트폰 기종이 하나 있었는데 시장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지다가 배터리 폭발사고가 발생해서 큰 손실을 입은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사건 이후에 이전의 손실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공장에 재고로 쌓여있는 부품들을 배터리만 새 제품으로 교채하여 다른 이름으로 더 저렴하게 판매하였다, 그 제품에 대한 시장의 호응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그 회사는 그나마 최소의 손실을 입고 그나마 최대의 이익을 얻은 것이다. 물론 안정성에 결함이 있다는 브랜드 가치의 손상은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것과 같은 사례가 기업에는 많이 있다.

​가게나 기업을 경영하면서 상품의 가격을 어느 정도로 매길 것인지도 위험수용이 필요하다 가게나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손님들이 비용을 지불할 때 어느 정도의 액수가 비용의 적정선인지 쉽게 정하기 어렵다. 이는 포지셔닝이 필요한 문제로도 볼수 있고 경쟁자들 보다 가격적인 면으로 승부를 보든지 아니면 가격외적인 면으로 승부를 볼지 정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가격적으로도 품질적으로도 우위에 서는 것이다. 지금 한창 잘나가는 H사의 G라는 모델의 차가 있다. 초기에는 중형차 라인업에서 여러모로 메리트가 없는 편인 어정쩡인 중간의 위치에 있었다. 품질에 비해 가격적인 유인이 적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그 모델은 차로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H사는 성공적으로 포지셔닝을 해냈고 그 증거로 이제 차로에서 빈번하게 보이는 차종이 되있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위험수용을 할때 약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될수도 있다. 그 중 하나로 바로 피면접자의 입장으로 면접장에서 면접을 볼 때이다. 어떤 기업에서 일하길 원하고 그 기업의 면접을 보길 기다리는 입장이라면 자소서를 쓰기전부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그 기업이 자유분방한 회사인지 그렇지 않은 회사인지 까지를 놓치지않고 파악 할 것이다. 기업의 방향성을 토대로 면접을 볼 때는 기업의 성향에 부합해서 마치 이 기업의 직원이라면 이렇게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위험수용 보다는 회사에 초즴을 맞춰 면접을 보면 합격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위험수용자에게 위험수용은 뚜렸한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지만 내가 과언을 한다면 세상을 견인하는 역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위험수용자는 아니겠지만 위험수용자의 비중이 더 크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가까운 예로 내가 지금 블로그를 사용하는 네이버도 창립자가 대기업을 다니다가 사퇴하고 네이버를 설립했다고 한다. 지금의 네이버는 아주 성공적이다.

밴처 캐피탈에 기대어 처음엔 소규모 인원이 합작해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히트하는건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그 보다는 쉽게 풀리지 않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대부분의 스타트업 회사들은 위험수용을 안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열정적으로 일에 전념하는 위험수용자들 이다. 만약 게임 어플에 기반한 스타트업 회사라면 성공을 위한 여러 복잡한 요인들이 많지만 아무쪼록 재미가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 재미라는 것의 포인트를 캐치하는건 만만찮은 일이다. 게다가 게임어플의 생명 주기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다. 위험수용은 수입원이 확실해 지기까지 이어지며 그렇게 수입원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속적으로 컨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마이크로 렌즈로 본 농산물 공판장 by HwanKook

나는 나라의 경제 상황을 눈앞에서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당연히 경기가 위축될 것이고 시장도 활기를 잃을 것이다. 그에 따라서 판매자와 소비자들의 시장을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질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면을 보면 농산물 공판장 같은 시장 거래의 활성화 정도가 실물 경제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농산물 공판장은 중간 유통과정을 줄여서 따로 유통업자에게 마진을 남기지 않고 농산물을 거래하는 곳이다. 그래서 농산물 공판장에서는 농산물을 재배한 판매자들이 직접 자신의 상품을 농산물 공판장에 가져와서 판다.

그런데 여기서 소비자들은 판매자로부터 구매하려고 하는 농산물이 하나같이 정말 맛있고 신선한지 알기 어렵다. 이 현상과 관련해서 레몬 시장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재화나 서비스 품질을 구매자가 알 수 없어서 불량품이 공공연히 거래되는 시장을 말한다. 예를들면 중고차와 중고차 딜러의 관계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이 시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소비자가 나름대로 꼼꼼히 따져서 산 농산물이라도 집에서 박스를 열고 하나씩 살펴보면 박스의 밑에 깔린 농산물은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한편 대다수의 소비자는 판매자의 농산물을 살 때 살아가는데 경제적 여유가 넘치지 않는 한 판매자와 가격을 두고 서로 흥정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판매자는 가격 매김을 잘해야 한다. 우선 주변에 같은 농작물을 파는 판매자가 자신의 농산물 가격을 어떻게 매기는지를 알아둬야 한다. 또 소비자와 가격 흥정을 할 때 소비자가 판매자가 제시하는 조건이 탐탁치 않아서 구매의사를 접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거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어떤 판매자는 자기가 매긴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싸게 매기고 져주는 듯이 가격을 내리면서 소비자와 흥정하기도 한다.

만약 어떤 소비자가 판매자의 농산물을 알아보기만 하고 다른 곳으로 그냥 가버리는것이 아니라 농산물을 사이에 두고 몇번 흥정한 후에 다른 곳을 둘러보고나서 다시 되돌아왔다고 하자. 그러면 판매자는 기존에 제시했던 가격에서 더 올릴 수는 없고 그대로 받거나 아니면 깍아줘야한다. 그런데 소비자가 가격을 깍아 달라고 하면 판매자는 때에 따라서는 깍아주는 편이 낫다. 얼토당토 않은 요구를 하는게 아니라면 소비자가 깍아 달라는것은 ‘이미 나는 다른 곳을 다 돌아봤는데 이곳이 가장 맘에 든다. 이건 한번 찔러보는 거다’ 라는 구매의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판매자는 불확실성 없이 거래를 성사시켜서 좋고 소비자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소비를 한것 같아서 좋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서로 윈윈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눈감고 탈출구 찾기 by HwanKook

불확실성이라는 건 대체로 실패의 여지를 남긴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갯속에 갇혀 있을 때의 우리는 그 안개를 벗어나야만 비좁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물과 타인과의 충돌을 피할 수가 없다.

​불확실성은 개척된 레드오션보다 개척되지 않은 블루오션에서 더 높다. 그런데 이미 매뉴얼이 정립됐다고도 말할 수 있는 레드오션은 불확실성이 덜한데도 블루오션보다 실패하기가 쉽다. 경쟁이 가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불확실성이 높다고 실패의 여지가 높은 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면 불확실성이 높아도 경쟁이 치열한 분야보다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주식시장은 대표적으로 불확실성에서 헤엄치는 분야이다. 시장은 마치 유기물처럼 움직인다. 투자자 모두가 리바이어던처럼 모여서 하나의 유기체가 된다. 어제 장에 뉴욕거래소에서 곡물가격의 하락이 그 다음날 한국 주식시장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다. 주식시장은 굉장히 복잡하게 엮여있어서 그런 불확실성 앞에서 쉽게 승리하기는 어렵다. 앞을 내다보는 투자자는 불확실성에서도 목적지까지 우여곡절이 있더라도 수영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투자자들은 수영하는 도중에 길을 잃을 수 있다.

​어느 MMORPG 게임은 어떤 값비싼 무기를 강화시켜 더 센 무기를 얻을 수 있게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강화시킬 때 그 무기가 확률적으로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유저들이 계속 강화하는 이유는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현금 거래할 때 희귀한 만큼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어서 아니면 본인만의 천하제일 검을 갖게 돼서 또는 그것도 아니면 그 파괴될까 안 될까 하면서 느끼는 스릴을 즐기려고 등등이 있을 것 같다.

​도박은 대표적으로 불확실성을 수반하는 중독 행위이다. 그리고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중독 중 하나 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겨우 몇 백 원의 돈이 걸린 놀이를 할 때도 이기면 쾌감을 느끼고 지면 분하지만 그래도 이건 말 그대로 애들 장난이다. 성인이 되어 도박판에서 중독된다면 가산을 탕진할지도 모르는 생존이 걸린 문제로 탈바꿈한다. 도박은 도박판을 조작하지 않는 한 능숙함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결국 둘 다에게 불확실하다. 그런 불확실성을 뚫고 돈을 따게 되면 도파민이 솟는 느낌을 수반한 쾌감이 들 것이다. 불확실성이 없는 게임을 한다면 아마 그건 우리가 하는 게임과는 괴리가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둘러싼 불확실성들 사이에서 어떻게 확신해야 할지 항상 고민하고 있다. 그런 내가 생각하는 불확실성 속에서 확신하는 법은 특별할 게 없다. 최대한 관련 데이터를 많이 모으고 공부하듯이 여러 번 되풀 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자고 나거나 다른 것에 생각을 환기 시켜보면 나중에 언뜻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빌미를 얻기도 한다. 앞의 과정을 답습하는 것에 가깝지만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가지 머릿속으로 정리까지 해주면 된다. 정리를 하면서 사람이나 문제에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마련이고 이게 확신으로 가는 최선 아니면 차선 중 하나가 될 수가 있다.

​결론적으로 내가 지금 이런 주제의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성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알 수가 없다. 다만 불확실성을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자유 의지와 신의 의지 by HwanKook

나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실상은 신의 의지 이지만 마치 자신이 인간의 의지 인 것처럼 착각 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나는 종교적 차원이 아니라 단지 현상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나의 입장을 밝히려고 한다.

일단 우리는 수면을 막을 수가 없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잠을 자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는 이미 인간의 범주가 아니거나 음모론처럼 음지의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잠을 꼭 자야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본인의 의지와 반대로 어쩔 수 없이 반강제로 잠을 자게 된다. 이처럼 수면은 인간의 자유 의지로 어찌 할 수 없는 하나의 예라고 생각한다.

​자유의지에 관련된 과학적 실험이 있다. 그 실험은 바로 사람은 생각을 하는 순간에 뇌에 어떤 전기 신호가 흐르는데 여기서 과학자들이 생각할 때 흐르는 신호를 관찰하니 생각할 때 신호가 흐르기 이전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생각할 때의 신호를 앞서는 어떤 전기 신호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의지와 관련 없는 일련의 신호가 발생한다는 것은 마치 자유의지에 어긋나는 반응이었고 과학자들은 이걸 알아낸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과학자들은 회의하기 시작했다.

내가 신이라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줬을까 주지 않았을까? 우리는 남의 정신에 들어갈 수가 없다. 나중에 그런 기술이 나올지는 미지수지만 현재로는 불가능이다. 그러니 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같은 인간이니 당신도 자유의지를 갖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타인은 분별이 불가능하기에 제외하고 근원적으로 나는 어떤가? 지금 내가 글을 쓰는게 과연 내 의지로 내 생각으로 내 근육의 세밀한 움직임으로 이루어 지는가?

여기서 본능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능이야말로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사람이 본능에 너무 충실하면 빈말로 짐승 같다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짐승처럼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유아기에 본능이 없었다면 생존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아기들이 본능에 충실하지 않으면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아기들의 행동이 과연 자유 의지일까? 난 신의 의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유 의지와 신의 의지가 신의 의사에 따라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자유의지가 주어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자유의지의 반할 이상이 신의 의지라고 본다.

경험이 과연 최고의 자산일까? by HwanKook

누구든지 사람은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고 통상적으로 그 반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가정할 필요도 없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에 동의할 것이다. 그럼 어떤 것을 경험이라고 하는가? 이것을 정의하고 나면 경험이 과연 최고의 자산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 의문을 지금부터 파헤쳐 보고자 한다.

경험이란 바로 과거의 누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가 없는 현재나 미래는 경험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만약 과거의 어떤 시점을 망각해버리면 그때의 경험은 지금의 경험으로 남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자산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문단의 처음 주장처럼 경험은 과거의 기억을 통해 얻기 마련이다. 누구 든지 기억할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경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험을 볼 때가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요소 중 극명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시험 대비를 위해서 지식이라는 경험을 제한된 시간 동안에 머릿속에 저장 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그 이후 시험을 볼 때 저장한 것을 인출하여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시험을 치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인지과학 관점에서 볼 때는 시험을 통해 지식을 쌓는 게 경험을 얻는 견고한 지름길이다. 이 지식들이 자신의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식이라는 자산을 가공한 것이 경험의 유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떤 고교 수학 책을 보면 수학은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고교 수학의 각 단원 중에 통계 단원은 인문 사회계열 대학에 진학할 학생에게는 유용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실생활과 무관해 보이는 수학이란 학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학생일 때는 수학을 열심히 공부했다가 자신의 생활이 수학과 거의 무관해지면 곧잘 잊어버린다. 기억은 충분히 사용하고 되새기지 않으면 망각을 통해 시간과 더불어 경험을 축소시킨다. 경험이 최고의 자산이 아닌 케이스이다. 하지만 우리는 수학을 공부함으로써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깨닫고 체화하게 된다. 이는 경험이 최소의 자산이 아닌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인간에게 망각은 중요한 기제이지만 망각을 통해 자신의 세계가 좁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만약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지만 단지 꺼낼 방법을 모르고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나의 생각같은 가정을 통해서 과학이 사람들의 망각했다고 여겼던 기억을 꺼내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희소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도 대단할 것이다. 게다가 여기서 더 나아가 망각이 마치 불수의 근처럼 일어나지 않고 과거를 현재로 생각하듯이 기억을 자유자재로 꺼내고 집어넣을 수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대상의 어떤 면을 바라볼 때 항상 좋은 면만 바라볼 수는 없듯이 역으로 불행해질 수도 있는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망각을 통해 불행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은 내가 예전에 다큐에서 봤던 망각을 하지 못하는 어떤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여자가 그동한 겪었던 불행한 과거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살면서 행복했던 경험도 있었겠지만 과거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힘들었던 시기가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것은 그 또한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고문에 가까워 보인다. 이런 면을 보면 망각은 인간이 건강하게 사는데 필수불가결의 능력이라고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이 비밀을 하나하나 벗겨내면 언젠가는 망각의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져본다.

이제 매듭을 짓자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든 경험들이 자산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긍정적인 경험들은 자신을 강화시켜 주지만 살다 보면 부정적인 경험도 하게 마련이다. 만약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부정적인 경험이라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경험을 통해서 아주 값진 자산을 얻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견디기 힘든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되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산이라고 불릴만한 경험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무게로 실리느냐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긍정은 강화를 부르지만 부정은 강화 아니면 약화를 부른다.

우리는 어디서 재미를 느끼는가 by HwanKook

아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재미의 요소에 대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생각이 실정에 맞지 않아도 나는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해 보고자 한다.

재미가 가장 중요한 분야는 여러 분야 중에서도 단연 게임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게임 산업은 정말 거대해서 게임 업계들은 일 년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여러 게임들 사이에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차트 안에 드는 게임들은 최소한 게임성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재미를 집요하게 자극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게임은 그 목적에 충실하도록 아주 재미있기 때문에 이런 요소로 인한 역기능으로 쉽게 게임에 중독되기도 한다. 게임에 빠져들어 과하게 몰입하는 게임중독은 예전부터 지금까지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오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게임중독을 질병인가 아닌 가로 편을 나누어 서로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게임에는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다. 내가 굳이 몇 가지만 언급한다면 스트레스 해소, 인지 기능 향상, 사회적 유대감 형성 등등이 있을 것이다.

게임의 중독성 중 하나는 빠르게 보상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MMORPG라는 게임 부류들에는 막일이라고 일컫는 것이 있다. 바로 자기 캐릭터의 레벨을 키우기 위해 지루하게 반복 사냥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게임의 콘텐츠가 부족하면 그렇게 운영하게 된다. 그래도 단정 지을 수 없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또 그게 지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든 게임이 다 그런 것도 아니고 더더욱 MMORPG 게임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빠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도 그 사람들은 게임이 여전히 재미있을까?

재미에 연관되는 단어 중 하나는 질림이다. 우리는 보통 어떤 게임에 재미를 붙여 한참 불타는 듯 파고들다가 계속 반복하면 질려버려서 한동안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런데 그 질림이라는 기간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 다소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은 짜고 맵고 기름지는 자극적인 음식 중 오직 한가지 만을 한 달 내내 먹어도 조금도 질려 하지 않는 반면 다른 어떤 사람은 그 음식을 고작 하루 이틀 동안 먹고 나면 질려 버린다.

잘 질려 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원한다. 당연히 어떤 한가지 경험만 반복하기 보다 그 주기가 짧고 적절한 시기 내에 새로운 경험이 주어질 때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일이 적당히 도전적일 때 그 단계를 깨고 또 다른 새로운 콘텐츠를 즐기기를 원한다. 게임을 하면서도 그렇고 일을 하면서도 그렇다. 그렇다고 이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건 아니다. 두 부류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

영화 산업도 무시할 수가 없다. 게임보다 상대적으로 더 거대한 시장이다. 하지만 게임처럼 중독성은 그렇게 크지 않아서 게임중독처럼 영화 중독으로 이슈화되지는 않는다. 두세 시간 남짓 상영시간인 영화를 보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선호한다. 이렇게 보면 영화는 예술이자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오락이다. 게임계도 그렇고 그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격인 영화계 또한 재미를 선사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분야의 선두주자들이다.

어떤 대상이 있다면 단지 그 뭔가에 대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 수가 많은지 또는 적은 지의 차이가 존재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상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대략 대중적인 재미이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항상 대중적은 아니다. 일단 간단히 두 부류로 나눠서 예술영화와 오락영화를 예로 들어 생각을 전개시켜 보려고 한다.

우리는 대체로 오락영화가 예술영화보다 흥행하는 것을 알고 있다. 오락영화에 가까운 대중적인 영화라고 해서 예술성을 띠지 않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대중적이라 해서 예술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는 것도 아니다. 대체로 사람들에게 예술영화는 재미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예술영화도 관객에 따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오락영화보다는 마니악 한 관객들이 관람하다. 오락영화는 관객에게 최대한 재미를 자극해서 관객 수를 늘리는데 우선적으로 목적이 있는 편이고 예술영화는 재미를 크게 고려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감독이 진정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것에 우선적인 목적이 있는 편이다. 지금 여기서 언급하고픈 내가 좋아하는 모 영화는 내 주관적으로는 예술적인 데다가 오락적인 면까지 골고루 갖췄다고 생각한다. 웰메이드 영화로 예술적 그리고 오락적인 요소가 잘 섞여있으면서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었던 영화였었다.

스포츠는 아주 먼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가장 방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연히도 인간에게 최대의 유희거리이다. 나는 게임도 아주 중독성이 높지만 스포츠도 사람에 따라서는 게임보다 더 중독성을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스포츠를 직접 할 때 재미를 사람들에게 스포츠는 어떤 목표를 성취하는데 의미가 있고 누구를 이기거나 자신을 이겨서 힘들게 목표를 성취하게 되면 그에 비례해서 쾌감도 커진다. 그래서 게임과도 유사하지만 더 잘하고 싶어지고 더 연습하고 싶어지고 더 연구하고 싶어지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서서히 스포츠에 재미를 느끼면서 중독되게 된다. 보는 걸 좋아하는 경우도 약간은 비슷하다. 보는 걸 좋아한다면 한 경기에서 잘 훈련받은 선수들의 기량을 보면서 재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다 동감할 것이다.​

대부분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재미없는 어떤 상황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재미를 찾는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 재미를 찾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생각 속의 시야를 다르게 비춰서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맛있다 같은 감각을 느끼지 아이스크림이 재미있다 같은 생각은 보통 하지 않는다. 그럼 아이스크림을 재미있게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엉뚱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시간 때우기 좋고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내 경우에 두뇌 스트레칭에도 좋은것 같고 재미도 있다.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때도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와 대화를 나누다 한두 번쯤은 다르게 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통찰력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그리 나쁜 시도는 아니라고 본다.

결국 어떤 콘텐츠도 재밌으면 팔린다. 그 대상에 재미를 느낄 때 사람들은 문화와 관련된 콘텐츠도 사 가고 장난감도 사 가고 게임을 사가기도 한다. 그런 콘텐츠가 어필하는 대상이 소수의 마니아층이거나 혹은 여러 대중들임에도 상관없이 재미라는 면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대상이 물건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그렇지 못할 때보다 일반적으로 상대에게 더 호감을 느끼게 된다. 사실 그저 내 생각으로는 정말 누군가에게 재미를 찾고 싶다면 누군가가 내게 재미를 주기 바라기 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떻게 해야 재미를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게다가 그런 시도 자체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선택이라는 단어와 딜레마 by HwanKook

본론에 도입하기에 앞서 살아오면서 우리들은 모종의 상황 앞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올 때가 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은 그 상황에 쉽게 선택을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 경우가 최소 한두 번 이상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개 곤란해진다. 그럴 때 사람마다 의사결정을 할 때 고려하는 사항들을 접근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누구에게는 대다수에게 무거운 결정을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결정으로 생각한다. 반면 누군가는 대다수에게 가벼운 결정을 무거운 결정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두 가지 상황에서 단지 선택의 무게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규모를 가늠하며 많은 선택지를 고려하고 그 이후 성향에 따라서 결정하는 속도가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과감히 재빠른 선택을 하는 게 나을가 아니면 최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천천히 선택하는 게 나을까?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으로부터 나올까?

​여기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가볍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지금부터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과 신중하게 결정을 하는 사람의 유형에 대해서 말해볼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마다 선택하는 스타일을 단순히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일반화하는 경향이 없지는 않기에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금부터 결정이 신속한 사람은 신속으로 결정이 신중한 사람은 신중이라고 치환하겠다.

일단 신속은 결단을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한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게 필요했다. 이런 성향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단점 또한 존재한다. 장점은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 조직의 최고 의사결정자인 경우에 결단을 신속하게 내려 고객의 니즈에 빠르게 호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 타당할 때 거래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여 조직의 이윤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단점은 옳은 결정에 이르기가 후자에 비해서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로 신중은 결단을 데이터에 기반해서 추론한다. 그래서 그들은 경험에 의존하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성향의 사람들에게도 장점과 단점이 물론 존재한다. 장점은 주어진 정보들 아래서 남을 명료하기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으로는 장고 끝에 악수 난다는 말이 있듯이 데이터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려다가 헤매게 되어 오히려 신중함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인이 최고 의사결정자라면 결정하느라 시간이 지연될 때 고객의 니즈에 한발 늦게 반응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쯤에서 무엇보다 선택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기회비용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회비용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는 시험을 앞두고 지금 이 시간에 심리학과 경제학을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에 내가 심리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선택을 하면 나는 이 선택으로 심리학을 공부한 시간만큼 경제학 공부하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제 앞서 말한 기회비용에 대한 생각을 글의 주제에 맞게 적용해서 언급하려고 한다. 시간과 선택은 상관관계가 있다. 신속은 시간은 적게 들고 신중은 시간이 많이 든다. 선택의 결실은 신중보다 신속이 못 미칠 수가 있다. 대신 신속은 빨리 결정한 만큼 시간을 아껴서 그 기회비용을 자신이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신중은 신속과 다르게 시간을 더 많이 지불하고 얻은 그 기회비용으로 가장 우선순위인 한 문제에 집중하여 투자한다.

​우리는 인생에서 자기 스스로 택할 수 없는 단 두 가지 선택 아닌 주어진 결과가 존재한다. 하나는 출생이고 둘째는 죽음이다. 보편적인 상황에서 온건하게 출생되었을 때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출생은 비록 사람에 따라서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 자체로 축복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받은 모든 사람의 목숨은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선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출생과는 별개로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공포이고 비탄의 대상이지만 천수를 다 누리고 죽는다는 건 이 세상에서 태어나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 섭리에 의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불가결의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잘못된 선택을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잘못된 선택은 잘한 선택과 한 끗 차이라고 본다. 물론 역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잘못된 선택이라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도록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본인을 둘러싼 집단 또한 포용력에 부합하는 사회를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모두가 좀 더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게 노력하면 사회에 긍정적인 여파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해결인 윤리적 문제들 by HwanKook

윤리적인 논쟁을 포함한 여러 논쟁에 있어서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의 동의를 구하여 합의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문화권인가에 따라서 옳고 그름의 특수성과 상대성이 공존한다.

특수성의 경우에 히잡을 쓰는 아랍권 여성들은 본인이 좋아서 히잡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문화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그 문화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가 있다. 이런 경우가 바로 특수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수성과 더불어 상대성의 경우에는 특수성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특수성이 특정 사회에 주로 존재하는 현상이라면 상대성은 둘 이상에 사회를 이루고 있는 현상의 비중을 다루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사회적 현상 중의 하나로 보편성이 존재한다. 어느 문화권이든 전쟁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살인은 예외 없이 통용되지 않는다. 이는 윤리에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윤리적 문제에는 타인의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등등의 영역을 침범하는 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렇게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보편성은 존재하지만 특수성과 상대성 또한 엮여있다. 전자와 후자에 충돌의 소지를 모두 판명하고 제거하려는 시도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보이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현재에도 여전히 도전적인 몇몇 윤리학의 문제들은 합의가 가능한지의 유무를 밝히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윤리적인 문제의 답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거나 아니면 타인의 입장에 관여하는 것 그리고 합의를 이루려는 시도 자체는 의미가 없지 않다. 그 여러 의미 중 하나로 어떤 주장이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지 공론화 시켜서 나오게 된 산물을 통해서 점진적인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는 선배들의 고민의 흔적이 후배에게 유산으로 남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목적지 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선배들이 그 근방까지 갈수 있는 지름길의 일부분을 그린 지도를 제작해 후배에게 넘겨줄 수는 있다. 그렇게 선배들의 지도를 넘겨받게 된 후배들은 시작부터 길을 헤매지 않을수 있는 윤리 가이드를 얻게 되는 것이다.

후배들은 윤리 가이드를 이용해서 여행을 한 후에 여행 후기로 가이드에 몇장을 더 추가하면 된다. 그러면 나중에 그 후배들이 선배가 되어 새로운 후배들에게 물려줄 것이고 이렇게 시간이 반복해 흐르면 보이지 않던 윤리적 문제들의 내막이 서서히 밝혀질 것이다.

독일 부가가치세 올라도 생필품 가격 여전한 이유 by HwanKook

부가가치세 인상 -> 슈퍼마켓이 부가가치세 인상분의 상당 부분 부담 -> 생필품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음
주요 생필품 낮은 부가가치세율 적용 ->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
독일의 슈퍼는 소규모 영세 가게가 아닌 지역별 전국적 체인화 생필품의 대부분 이곳으로 유통 (독일판 편의점같은 개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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